억수처럼 비 온 후 도깨비 꿈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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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은 비가 오는 날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일회용 하얀 비닐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참 좋다.
그 소리는
내 첫사랑의 달콤한 입술이
내 혀끝에 닿는 소리와 참 닮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비가 오는 시간이다.
비가 오는 시간에는
커다란 통창이 있는 카페에서
억수 같이 내리는 비를 바라 보는 게 참 좋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도
비가 오는 순간이다.
달콤한 라떼 한 잔을 머금고
목에 넘기는 순간
네 혀가 내 목젖을 앗아 가던 순간이
생각 나서 참 좋다.
밤새 내리고도 모자랐던 지
아침까지 빗줄기가 억수로 내리고 있다.
억수처럼 내리던 비
다행히 그 비도 오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잠시 활짝 개였다.
그 틈을 타
잠시 외출을 하라는 배려일까
도서곤에서
7월 신간 잡지를 보다가
문득 옛 골목이 생각 났다.
작은 시장 골목.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 골목,
아니
그 때보다 훨씬 더 낡고 슬럼화 된 골목.
골목들.
이런 골목들은 아직도 부산 곳곳에는
그 수도 셀 수 없을만큼 많다.
재개발 조차
하기 어려운 골목들.
다행히 그 골목들 틈새로
감천문화골목도 생기고
흰여울 문화 마을도 생겨 났다.
문화 마을.
이름은 예쁘지만
낙후 된 골목을 더욱 낙후 시키고 있다.
백세시대.
화려한 그 이름 뒤에
우리 노후의 쇠락된 삶을
뒤춤에 감추어 둔 것 처럼...
화려한 조명 뒤에는
늘 어두운 그림자가 따르기 마련이
아닌가.
그래도 여전히 초라하지만
용두산 뒷골목 어느 구석탱이에
나도 몰래 흘려 놓은
내 허름한 청춘이
여전히 충무동 좁은 구석 하나를 빌린
고갈비 골목에 숨 쉬고 있다는 게
이 또한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혹시라도
이 골목 어디선가에
나처럼 잃어버린 청춘을 찾아 나선
길 잃은 영혼의 그녀가 있다면
채우다 만 내 빈 공간에
그 허허로운 영혼과 함께
빈 공간도 채우고
서로의 허허로운 영혼도
함께 채우고 싶다.
듣다 만 선율도 마저 채우고
서로가 잃어버린
그 허허롭던 청춘의 골목길도
손 잡고 함께 찾아 가 보고 싶다.
도깨비의 꿈처럼
허황된 것인 줄
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