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풍경과 여행이야기

부산 정원 박람회장과 가을 갈대밭을 걸으며...

달무릇. 2023. 11. 13.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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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 때는 빛나고 싶은 청춘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 청춘도 가고 빛나고 싶던 열정도 사라 졌다.

그럼에도 아직 내 바라는 소원이 한 가지 있다면

 

지금 내 곁에 있는 한 사람 

그 사람이 남은 내 시간 동안 함께 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비록 끝 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기억이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밤 사이 별과 함께 좁은 골목길을 밝혀 주던 촉 낮은 가로등이

얕은 아침 햇살에 긴 어둠과 함께 사라졌다.

그래도 아침 방안은 살짝 밝혀 둔 채

새벽 일찍 물고기 잡이에 나섰던 조그만 배들이

하나 둘씩 작은 포구로 들어 올 즈음에

아침 숟가락 허기가 지지 않을 정도로 두어 술

국에 말아 먹은 후 바깥으로 나섰다.

 

오랫만에 머리 손질을 하기 위해서다.

한 잘 넘게 미루어 두었던 손질인 데 다가

내일 그가 오기로 되어 있기 때문 이다.

 

그는 젊고 나는 초로이기 때문에

그가 오는 날엔 늘 설레임 반, 걱정이 반 이다.

자꾸 하루 하루 늙어 가고 초라해 져 보이는 내 모습이

신경이 쐰다.

 

그는 더 세련되어 가고

멋있어 가는 데.

늘 가던 이발소에서 간단한 커트와 염색을 했다.

부산으로 귀향을 한 후 처음 찾은 이발소.

그 동네를 떠나 새 동네로 이사를 온 지도

반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그 이발소를 찾아 간다.

 

그 까닭은 은근히 내가 고리타분한 까닭이다.

사람도 잘 바꾸지 못하지만

가게의 단골도 쉽사리 바꾸지 못한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옛말을 믿는 것도 아니면서.

 

이발을 하고 나니

벌써 점심 시간이다.

동네에서 간단히 짜장면을 먹기로 했다.

이 집의 주 메뉴 손칼짜장면이 그립기 때문이다.

 

그리고 찾아간 곳.

다대포 해수욕장이다.

다대포 해수욕장은 다대포 낙조뿐만 아니라

가을 이 맘 때 쯤의 갈대밭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많은 전문 사진 예술가들이 찾아 오는 곳이기도

하다.

 

해수욕장은 때 맞춰

2023 부산 정원 박람회도 함께 개최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박람회장 뿐만 아니라

바닷가 여기 저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해변 산책을 즐기고 있다.

맨발로 모래밭을 걸으며 너무나 부드럽다며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저희들끼리 깔깔 뭐가 그리도 우습고 즐거운 지

입을 함지박만큼 벌리고들 있는 데

그 모두가 젊거나 이제 중년의 새 문으로 들어서는

여인들이다.

 

대신

갈대밭을 호젓하게 걸으며

깊고 깊은 가을 추억들을 쌓으며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연인들이다.

 

그 모두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행복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일상에서 쉽게 주울 수 있는 행복.

 

 

오후 늦게 집에 오는 길.

작은 전통 시장의 길목에서 수육용 돼지고기 두어 근을 사와

집에 오자마자 찜을 하며 간단한 술상도 함께 마련했다.

 

거의 즐기지도 않는 술이다.

주위에 만나는 사람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으니

술  마실 일도 없다.

 

그렇지만

수육을 그냥 먹을 수는 없지.

 

유튜버에서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마시는

한 잔 술도 이럴 때는 참 좋다.

 

내일이면 그가 온다고 하지만

오늘따라 그가 더 기다려 지는 까닭은

그와 함께 제대로 된 술을 한 잔 하고 싶기 때문이다.

행복.

행복이란 참 별 것이 아니다.

그저 잔잔한 바다처럼 별일 없이

평온하게 지나 간다면

그게 바로 우리 모두가 바라는

행복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