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풍경과 여행이야기

구례 화엄사의 봄 풍경...

달무릇. 2024. 4. 2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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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봄을 넘어 활기차게 여름으로 넘어 가는 데

내 몸만은 자꾸 시들어 가고 있는 느낌이 들어

훌쩍 떠나 온 여행.

 

그 여행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봄

아니 당신

아니 봄.

 

 

그렇게 당신인 듯

봄인 듯

우리는 스쳐 지나 가다

동시에 뒤돌아 보았다.

 

그 때부터 우리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그 운명적인 지독한 사랑의 시작과 끝.

 

그것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고

그 일상은 언제나 그리움과 함께 시작 되곤 했다.

 

간절기.

봄과 여름의 그 어느 교차점에서 부터.

날이 밝고 다시 여행이 시작 되었다.

이 번 여행의 마무리인 듯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인 듯.

 

그 무엇이 되었던

그냥 가긴 너무 아쉬워 잠시 화엄사로 발길을 향했다.

순천 국가 정원을 보고 난 후 구례 화엄사를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쉽다.

 

더구나 우리의 많은 추억이 함께 했던 곳이라

지나치고 나면 더더욱 미련이 한가득 남을 것 같아

차마 지나칠 수가 없다.

 

화엄사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작은 카페 하나.

몇 번 이길을 지났음에도 왜 이 카페가 한 번도

눈에 들어 오지 않았지 하는

궁금증이 일게 하는 아담한 카페.

마치 길가에 갓 피어 난 민들레 같은 카페다.

 

어떤 때는 눈에 전혀 들어 오지 않고

어떤 때는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 오는 샛노란 민들레 같은.

황토로 다듬고 한지로 꾸며 놓은 카페.

이런 곳은 그 어느 화려하고 달달한 서양 차보다

은은한 향이 우려 나오는 우리 전통차가 어울리는 것 같다.

다육이도 곳곳에 꽤 많다.

이처럼 많은 다육이를 보게 될 때는 늘

강원도 동해에 살 때 기르던 다육이가 생각이 난다.

거실과 베란다

그리고 정원에 가득 채워졌던 다육이들.

 

그 중에서도 지금도 유난히 생각 나는  귀여웠던 아이 둘.

리툽스와 고노피티움.

얼마나 앙증맞게 잘 자라 주었던 지.

다행히 차 맛도 참 좋다.

찻집을 나와 드디어 도착한 화엄사 입구.

초파일을 앞 두고 각양각색의 연등이 화려하다.

 이 곳은 이제 막 봄이 피어 나는 듯 하다.

아마도 그늘진 탓이리라.

드디어 들어 선 경내.

사위가 호젓 하다.

 

사람의 냄새 대신에 자연의 내음이 사방 곳곳에서

풍겨 나온다.

 

이제 맛 햇빛이 들기 시작한 탓일가

방마다 돗자리 가리개가 쳐져 있다.

 

그 또한 산사의 운치가 풍겨 난다.

한적한 경내를 돌고 돌아 드디어 도착한 대웅전 앞 마당.

사람들이 제법 따가운 햇살을 피해 그늘이 내린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그 모습 또한 정겹고 평화롭다.

 

나도 그들과 하나가 되어 긴 시간 함께 하고 싶지만

그렇게 오래도록 머물 시간은 허락 되지 않을 것 같아

약간 서둘러 경내 여기 저기를 둘러 보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층암으로 가는 길.

빛깔고운 장끼 한 마리가 사람의 기척에 고개를 돌려 무심히 쳐다 본다.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고

도망을 가거나 바쁘게 움직일 생각은 전혀 없다.

 

그냥 내 쪽을 힐긋 한 번 쳐다 본 것

그 게 다 다.

 

그리고는 뒤돌아 성큼 성큼 가더니만

저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작은 장끼에게로 다가 가고 있다.

설마?

아니 겠지.ㅎ

그런데 그 옆의 까투리는 어쩐 지 외로워 보인다.

이 녀석도 사람의 기척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어쩌면 사람보다 제 짝이 더 그리운 데

원망스럽게도 장끼는  자기보다 다른 장끼에게 더 관심을 주니

그게 더 서러워 보이는 것 같다.

 

나도 짐짓 그녀를 모른 채 하고 갈 길을 간다.

드디어 도착한 구층암.

외진 곳에 자리한 탓인 지

더욱 외로워 보인다.

 

외로운 나그네는 더욱 외로움을 탈 듯 하다.

숨결 하나 들리지 않는 작은 산사의 정적.

그 와중에도 눈에 들어 오는 오래된 목조 건물의 오래된 나무 기둥,

사람의 손길을 전혀 보태지 않은 기둥의 모습이 더욱 기이 하다.

나무의 처음 모양 그대로 기둥을 삼았다.

 

그 나무 기둥이 하도 세월을 먹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하다.

조심스레 발길을 뒤로 돌린다.

내 발길에 놀라 기둥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올라오는 길에 무심히 지나쳤던 꽃.

모양도 색깔도 오묘하고 기이하다.

귀한 수반에 솜씨좋게 꽃꽂이를 하여도 이토록 아름답지는 못할 것 같다.

누가 감히 이 모양을 흉내 낼 것인가.

그리고 경내 전체를 환히 밝혀 주는 커다란 영산홍 한 그루.

화엄사 연등을 다 밝혀도 이처럼 밝지는 못하리라.

오늘의 화엄사 방문

호젓해서 더욱 좋았던 방문이다.

화엄사를 나와 길을 떠나기 전에 들른 작은 식당.

산채 비빔밥과 모주 한 잔.

전주 한옥마을에서 마시지 못한 모주를 이 곳에서

만났다.

목마름에 우선 모주 한 잔부터 벌컥 들이켰다.

이 시원함이 주는 짜릿함.

 

이 또한 여행길이 나그네에게 나누어 주는 

한 잔의 생명수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