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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어둠속에서 들여다 보기.
처음에 어둠 속에 발을 내디딜 때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모든 사물이 또렷이 눈에 들어 온다.
그 조금의 시간.
그 조금의 기다림이
캄캄했던 내 앞을 환히 밝혀 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어둡고 캄캄한 굴이나 터널 속에 갇혀있다고
느낄지라도
조금만 아주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그러면 사물이 천천히 또렷이 보이고
길도 훤히 잘 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굳이 삶에서
조급해야 할 이유가 없다.
왜냐면 우리는 충분히 긴 시간을 살아 가고 있으니까.
아주 조금의 시간도 기다릴 여유가 없을만큼
인생은 결코 짧지 않다.
그 무엇을 기다리든.
어둠속에서 들여다 보기.
올해 부산 비엔날레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 집은 어느 구석 어두운 곳이 없다.
비록 캄캄한 밤이라고 할지라도
어느 한 구석에서는 지그마한 빛 한 줄기라도 들어 온다.
참 다행이다.
언제나 한 불기 빛이라도 내 곁에 머물러 준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다.
그러나 아침 창밖은 분간을 할 수가 없다.
하늘 한 켠에는 찬란한 붉은 밫이 감도는 데도
또 다른 한 켠에서는 먹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의 모습이 사람의 간사함을 들여다 보는 것 같다.
이 간사함은 어쩜 지금 내 마음인 지도 모른다.
잡아야 하나.
놓아야 하나.
허둥대기도 하고 갈팡질팡 하는 마음처럼.
그러나 이 또한 가만히 내 버려 두자.
어차피 내 마음이 내 마음이기는 하지만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결국엔 밤이 오고
또 다른 새 날이 오고야 말 것을.
그렇게 지난 하루가 지나고 다시 날이 밝은 오후
일찌감치 집을 나서 이른 점심을 챙겨 먹었다.
가능하면 부드러운 음식을 챙겨 먹으라는 의사의 권고 때문이다.
70년을 아무 탈 없이 곱게 곁에서 지켜주던 이빨들이 하나씩 탈이 나기 시작한다.
연초에 어금니가 부서져 치아 하나를 빼낸 자리에
이 달초 임플란트에 들어 갔다.
그리고 보름이 지난 오늘 실밥을 뺐다.
그러고도 몇 달이 더 지나야 완전한 임플란트 치료가 끝난다고 한다.
몇 달.
긴 세월이다.
그 동안 술은 물론 음식도 딱딱한 것은 커녕 부드러운 것도 가능한
임플란트 한 곳으로 씹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그 것만 문제가 아니다.
다시 터널이 하나 더 생겼다.
반대쪽 치아 하나도 충치가 있어 부실 하니
미리 크라운을 하는 게 좋겠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이빨도 발치를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 하나는 크라운을 씌우기 위해서는 신경 치료를 해야 하는 데
신경 치료 하는 과정에 치아에 다른 문제(그 다른 문제가 뭔지 확실히 모르겠지만)가
생기면 발치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예를 들면 신경치료 하는 과정에서 신경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는 수가 있는데
그 경우가 하나라고 한다.
참 어렵다.
치아 하나 치료 하는 데도
좁디 좁은 길이 얼마나 많은 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의사는 은근히 위로라고 한 마디 해 준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내 나이 또래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아가 두어 개 없거나
임플란트를 다 했는 데
아직도 발치한 치아가 하나 뿐이라면 아주 관리를 잘한 편이라고 한다.
위로의 말이라고 한다는 말이.
쯥.
그래도 다행이다.
남들보다 꽤 치아 관리가 잘 된 편이라고 하니.
마음 한 구석이 제법 환하게 밝아오는 기분이다.
그래 다행이다.
70년 동안
그 동안 날 잘 지켜 주었으니
한 편은 고맙기도 하다.
내 치아가.
내 건강이.
또 살다가 어떤 어둡고 긴 터널을 얼마나 더 지나가야 할 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너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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