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일상인 삶

소소한 일상과 여행이야기

소소한 일상과 여행이야기

잡다한 풍경과 여행이야기

나이 든 여동생과 오래 된 골목길을 걸으며..

달무릇. 2023. 11. 11. 17:59

^*^

비가 오리라는 예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가을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다.

그 청명한 빛이 창문을 타고 흘러 들어 와

하얗게 새로칠 한 온 방안을 파랗게

물을 들일 것만 같다.

 

이처럼 푸르른 날에 하릴없이

집 안에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하루의 행복을 발로 걷어 차 버리는 것과

무엇 하나 다를까 싶어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집 밖으로 나섰다.

 

그러나 혼자 이 귀하고 좋은 가을 하늘을 

즐긴다는 것은 작은 죄악을 저지르는 것 같아

오늘도 용호동에 사는 여동생을 불러 내었다.

 

처음에는

내가 용호동으로 넘어 가서

차와 식사를 함께 한 후

오륙도에서 이기대까지 며칠 전과 같이

다시 한 번 트래킹을 해 볼까 하였으나

 

그녀가 이송도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하여

영도로 가기로 하였다.

 

영도.

영도는 그녀와 내가 함께 태어 나고

자라면서 초등학교도 같이 나온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곳은 우리들 유소년 시절의 아픈 기억이 묻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처음 어머니는 작은 시장골목에서 조그만 화장품 가게를 운영을 하셨고

장사도 제법 잘 되었는 데 어느 해 인 가

시골 외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 가시는 바람에

어머니는 황망한 정신으로 부래부랴 시골로 가셨는 데

가시면서 가게도 제대로 단속을 하지 않으셨는 지

어머니가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오셨을 때는

가게는 텅텅 비어 있었다.

 

가게 물건을 몽땅 도둑을 맞은 것이다.

당시 화장품 가게는 부모님으로서는 거의 전 재산을 부어놓은 거나

다름이 없던 것이었는 데.

 

그 후로 어머니는 그 자리에 화장품 대신에 자그마한 반찬 가게를 하시면서

근근히 살림을 꾸려 가시면서 우리 5남매를 키워 내셨던 것이다.

 

물론 아버지는 계셨고,

그리고 그의 직업은 당시에는 돈도 제법 잘 번다고 하는

해기원 이셨다.

비록 조그만 배지만 기관장도 하시고  선장도 하신 분이지만

가게에는 거의 도움을 주시지 않아

어머니 혼자 우리를 키운 거나 전혀 다름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그러한 어릴 적 기억이 담긴 곳을 가고 싶었던지 동생은 우리가

자라던 곳으로 가 보자고 했다.

 

반세기도 훨씬 지난 영도의 작은 시장 골목.

그 50년 동안 온 나라가 변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가 나고 잔란 곳은 그 긴세월 동안 거의 

아니 전혀 변함이 없다.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한 풍경이다.

 

 

 

그렇게 옛 추억이 고스란히  숨쉬고 있는 동네를 벗어나

우리는 동삼중리에 있는 제주 복국으로 갔다.

아마도 그녀와 함께 제주 복국을 먹으러 오기는 처음이지 싶다.

 

오랫만에 함께 주문한 생참복국.

다행히 그녀도 맛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소화도 시킬 겸 천천히 함짓골 해안도르를 따라

한시간 넘게 걸었다.

이제는 서서히 다리도 아플 즈음에

흰여울 문화골목 카페거리에 닿았다.

 

흰여울 문화골목.

말이 좋아  문화골목이지 이제는 그저 바다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즐기는 카페 거리로 변모한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열정으로 가득찬 젊은 예술가들과  공방인들로

열 집이 넘었던 문화골목은 어느새 한 집, 두 집 비어 가다가

이제는 중년이 된 공방인 한 사람만 남았다.

그녀와 내가 찾아 간 카페

영혼이 힐링하며 쉴 수 있는 카페다.

 

커피와 음료를 각각 한 잔씩 주문하여

2층에서 막 쉬려고 하는 데

잘생긴 군복 차림의 청년과 그의 연인인 듯한 아가씨가 들어와

둘은 나란히 피아노 앞에 앉아

우리가 있든 없든 개의 치 않고 제법 빼어난 솜씨로

함께 피아노 연주를 했다.

 

소녀의 기도, 달빛 등.

우리에게도 무척 익숙한 곡이라

듣기에도 편안하다.

 

그들의 협연을 좀 더 듣고 싶기도 하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정원이 아름다운 카페이기 때문에 정원에서

바다를 바라 보는 풍경도 피아노의 감미로운 선율 못지 않게

평화로움과 작은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카페를 나온 우리는 

흰여울 골목을 두어 곳 돌다가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다음에 다시 만나 간단한 식사와 커피 한 잔을 하자고

하면서.

그녀와 헤어진 뒤

 바다가 살풋이 보이는 좁은 해안길을 다시 혼자 걸어 본다.

조금은 변했지만 여전히 익숙한 길.

내 작은 꿈을 영글어 내던 곳.

 

그 길을 오늘도 혼자 걸어 본다.

그 때 꾸었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 시절 바랐던 행복은 찾은 것 같아

참 다행이다.

 

노후를 평화롭게 보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