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겼던 일과 인연들
다들 그러려니 하자.
이혼의 아픔과 사별의 슬픔조차
그저 그러려니 하자.
우리가 이미 잊었거나 아직도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잠시 스쳐갔거나 오래도록 머물다가 간 인연들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자.
그래도 정 잊지 못하겠다면
그 아픔과 슬픔이 스몃던 추억의 장소로 가 보자.
다시 아픔이 오던 슬픔이 찾아 오던.
그래도 그 때도 여전히 그러려니 하자.
어쩌면 그 때나 지금이나
내 가슴에 맺혀 있는 모든 추억들과 기억들이
그저 고양이의 헛한 한 번의 웃음일 수도 있지 않은가.
아니면
위로는 시원하고 아래는 뜨겁거나
혹은
위 쪽은 는 쌉사름하고 아래 쪽은 달콤한
한 잔의 라떼 맛일 수도 있는 게
우리의 삶이고 인생이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갑자기 영도가 그리워 졌다.
그저 예전에 살던 동네
작은 섬 영도가 아니라
늘 그립고 애틋함이 묻어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너무나 멀고 높게 느껴졌기에
차마 찾아 가기에는 망설여 졌던 고갈산 산만디.
오늘은 용기를 내어
그 산만디까지 오르기로 했다.
해발 395미터.
그다지 높거나 가파른 산길은 아니다.
그럼에도 쉽게 찾아 나서지 못했던 산이다.
대부분은 자갈치나 남포동 지하철 역에서 부터
산의 정상까지 오르려고 시도 했기에
다리가 아프고 몸도 피곤하여
중도에 포기를 한 적이 많다.
해서
오늘은 버스를 타고 신선중학교 입구에 내려
산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
복천사 뒷길로 해서 산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가장 빠른 코스이기도 하다.
대신 다른 코스에 비해 조금 가파르긴 하다.
복천사.
예전엔 복천암이라고 불렀던 작은 사찰이 지금은
규모가 커져서 복천사라고 그 이름도 바뀌었다.
그 세월만큼
많은 이끼가 불상 여기저기 잔뜩 그 세월을 품고 자라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망개 열매.
어릴적엔 맛있다면 그 새콤한 맛을 얼마나 즐겼는 지.
드디어 정상.
그러나 정상의 모습모다 갓 깨어난 고양이 가족들이
먼저 눈에 들어 온다.
평화가 주는 고요함.
그리고 행복함.
가족이 주는 행복이 이 보다 더 함이 어디 있을까.
사람이든 미물이든.
드디어 도착한 영도
그 작은 섬의 제일 꼭대기.
봉래산이라는 팻말이 자랑스럽다.
바로 이 팻말 아래에 일본이 쇠말뚝을 박아
한민족의 정기를 다 빼려고 했다지.
영화 '파묘'의 이야기처럼.
그리고 그 옆의 작지만 우람한 바위 하나.
바로 영신할매 바위다.,
영도민을 지켜 주었던 영도의 산신.
바우가 반질반질 하다.
얼마나 많은 손길이 스쳐 갔을까.
그 바위에서 바라보이는
부산의 풍경들.
모두가 할매 품에 아늑하게 안겨 있는 듯
평안 하다.
하산 하는 길.
그리고 끝없이 길게 이어진 데크 길.
처음 걸어 보는 길이다.
얼마 동안이나 이 산에 오르지 않았는가를
한 번에 가늠을 할 수가 있다.
봄의 끝자락인 데도 여기저기 철쭉꽃이 만발 하다.
길을 따라 걷다보니
나도 모르게 다다른 고구마 박물관.
바로 이 곳이
조엄이 일본에서 고구마 종자를 가져 와
우리나라에 처음 심었던 곳이라고 한다.
조내기 고구마의 원산지.
고구마 박물관 2층에 있는 조그만 카페.
마침 목도 마르고 달달한 게 그리워 졌는 데
참 잘 됐다.
그리고 고구마 박물관을 나와 도착한 홍차왕자.
지나가는 길에 오랜만에 홍차나 한 잔 마시고 가려 했는데
문이 닫혔다.
아니 아예 영업을 종료 했다.
대신 그 옆에 카페 하나가 아담하게 들어 섰다.
짧았지만 긴 하루.
벼르고 벼렸던 산행.
피곤하지만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는 하루다.
그래 그렇다.
그저 이렇게 매일 하루 하루 잘 살면 그만인 것을
그 무엇하나 그리워 하지도 애틋해 하지도 말자.
그저 다 그러려니 하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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