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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배 앓이를 하면서 남은 삶에 대하여
한번씩 곰곰히 생각하게 된다.
지금껏 내 살아 온 삶을 돌아 보면
내일 당장 이승을 떠난다고 해도
미련이나 아쉬울 것이 하나없다.
살면서 살아 오면서 적어도 성인이 된 이후에는
내 하고 싶은 것은 미루지 않고 다 해 온 것 같다.
먹고 입고 가고
그러면서 이런저런 인맥들도 악연없이 쌓아온 것 같다.
돌아보면 대체로 난 사람들로부터 꽤 많은 관심과 사랑도
받아왔던 것 같다.
오히려 내가 그 받은 사랑에 못미치게 보답한 것 같아
그것이 오히려 조금은 미련과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실 경제적으로야 지금도 그다지 모자라지는 않는다.
때문에 살아오면서 남에게 크게 베풀지는 못했지만
뒷담화를 들을만큼 인색하게 살아 오지도 않았다.
꽤 오래전부터
유니세프나 세이브 더 칠더런, 국경없는 의사회 같은 곳에
아주 미약하나마 꾸준히 자동 이체를 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다만 육체적으로 자원 봉사를 하지 않아 그게 늘
마음에 걸리기는 하다.
잠시
은퇴 후 내 수입에 대하여 뒤 돌아 봤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도 현재의 수입은 퇴직 직전의 수입에 비하여
40%가 채 안된다.
퇴직을 할 당시의 연금 액수는
마지막 3년간 기본급의 평균을 내어
그 평균액의 60~70%를 지급 받았다.
기본급이란 실 수령액에서 큰 비중을 차지 하긴 하지만
사실 근로 생활자에겐 기본급 외에도 이런저런 수당들이 꽤 많다.
일년에 네 번 나오는 정근 수당과 정근 수당 가산금,
추석과 설에 나오는 명절 수당,
장기 근속 수당.
가족 수당, 복지 수당,
그리고 직급 수당과 직책 수당.
그 외 보직과 근무지에 따라서 나오는
벽지 수당, 위험 수당,
그리고 나의 경우는 CIQ 근무 수당도 있었다.
물론 이 외도 몇 개의 수당이 더 있고
실비로 지금 받는 국내 출장비와 해외 출장비도 있었다.
그래서 그럴까.
퇴직을 한 지 꽤 오래된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퇴직 후 첫 몇년은
상대적으로 남보다 조금 더 연금을 수령하고 있다고 하지만
박탈감도 적지 않았다.
물론
가끔씩 유관기관에 강의를 나가 거마비를 받는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어쟀든
지금도 거의 정기적으로 손에 쥐는 월 수령액으로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다.
연금 350 더하기 알파라고나 할까.
그 알파에는
자식들이 매월 챙겨 주는 용돈 20~30만원.
그리고 약간의 정기적 금융 이자와 주식 등의 배당이다.
이 게 요즘 내 월 수입의 거의 전부다.
가끔은 꽤 두둑했던 시간 외 수당이 그리울 때도 있고
직책 수당과 판공비가 그리울 때도 있다.
그 때는 그것이 꽤 쓸만한 용돈 이었는 데..ㅎ
그리고 요즈음은
또한 가능하면
매 월 들어 오는 수입을
그 달에 다 소비를 하려고 하는 편이다.
맛있는 것, 좋은 것, 좋은 곳
먹고, 입고 , 가면서.
왜냐면
요즈음은 부모나 자식이나 다 장수를 하는 추세라고
하니
굳이 노노유산까지 생각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집 한 채와 장레비 정도는 남겨 놓아야 겠지.
나머지는 띵가 띵가 나를 위해
쓰면서 살아야지.
모르긴 몰라도
어쩜 그게 요즘음 자식들이
부모에게 바라는 것일 지도 모르지.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란
부모 마음이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란
자식 마음으로...
순
내 생각일 지도 모르겠지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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