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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가진 게 없어도
누추하지만
내 한 몸 편히 쉴 오두막이 있고
굶지 않을만큼 삼시세끼가 있고
헐벗지 않을만큼 의복이 있고
외롭지 않을 정도의 이웃이 있으니
이 만큼만 해도 행복하지 아니한가.
요즘 계속 날씨가 포근하다.
봄이 거의 다 왔나보다.
어제는
저녁 시간이 훨씬 지나 밤중이 가까웠는 데도 불구하고
차가운 밤 기운이 없다.
동네를 어슬렁 거리다가 포장마차촌에 이르자
나도 소주 한 잔이 그리웠지만
함께 마실 이가 없어 참았다.
누군가와 함께 밤마실을 나왔다면
아마도 선뜻 한 잔하러 들어갔을 지도 모르겠다.
술이 약하지만
분위기가 발길을 유혹한다.
오늘 아침은 의도치 않게 굶었다.
어제 집에 오는 길에 현관문 카드를 분실하여
집 근처에 있는 열쇠 수리점에 들렀더니
카드만 사서 등록만 하면 된다고 하였다.
등록을 할 줄 모른다고 하니
그러면 오늘 아침에 와서 등록을 해 주겠다고 하여
그러라고 했더니 아침 일찍 와 버린 것이다.
집에서 가게까지 걸어서 기껏 3~4분.
등록하는 데 1~2분.
그래도 출장비는 3만원을 줘야했다.
카드값 2만원.
도합 5만원이 들었다.
이게
요즘의 인건비다.
그러고보면 식당의 음식값은 참 싸다.
단돈 1~2만원에 식사는 물론 설거지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식사를 즐길 수가 있으니...
원래는 카드 한 개 가격이 만원이지만
만약을 위해 아예 두 개를 해 버렸다.
비록
이제 석달만 있으면 비워줘야 할 집이지만...
대신
아점으로 식당에서 챙겨 먹을 요량으로
좀 느즈막하게 집을 나왔다.
백화점 10층 식당가로 갔다.
처음 주문 해 본 전복버섯 솥밥이다.
생각보다 의외로 맛있다.
다행이다.
그러나
막상 식당을 나와도 갈 곳이 마땅찮다.
결국 발길이 향한 곳이 부산역이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온 곳
바로 경주다.
한 달만에 찾아 온 경주,
겸사겸사 여기 저기 집도 알아 볼 요량으로 왔다.
그러나 경주역에서 날 젤 먼저 반긴 것은
갓난 아기의 솜털같은 뺨을 닮은
살짝 얼굴만 내민 하얀 목련꽃이다.
예쁘다.
그리고 난 후 찾아 온 곳.
당연히 대릉원과 황리단길 이다.
경주역에서 버스를 타고 황리단길에 내리자마자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이
풍경보다 빵집이다.
찰보리빵을 최초 발명한 집.
찰보리빵 원조빵집의 빵맛이 궁금하다.
내 호기심에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맛이라도 보고가자고 들렀던 것이 의외로
빵을 제법 샀다.
생강라떼와 함께.
역시 빵도 맛있고
라떼도 맛있다.
원래 칭찬을 잘 하는 나이지만
어쨌든 맛나다..ㅎ
실내인테리어도 아기자기.
빵집에서 사거리만 건너면 대릉원이다.
파릇파릇 여기저기 봄기운이 가득 올라오고 있다.
대릉원의 목련들도 활짝 필 준비를 여기저기서
하고 있다.
예쁘다.
곱다.
산수유는 이미 활짝 핀 지가 오래다.
파아란 하늘색과 너무 잘 어울린다.
오늘 대릉원에서 가장 반한
풍경이다.
바로 그 옆에는 갓 물오른 능수버들의 옅은 연두색이
더할 나위없이 고혹적이다.
여인의 춤사위 같다.
대릉원을 나와 천천히 황리단길을 걸어 본다.
벌써 다섯 시가 다 되어 간다.
그러나 내게 시간이란 게
무슨 의미?
금요일.
아직은 주중.
그래도 관광객들이 골목골목 여기저기 눈에 띈다.
외국인들도 이제는 참 많이 보인다.
홍매화.
햇볕에 반사된 꽃잎들이 피보다 붉다.
능수매화를 끝으로
경주 나드리를 끝냈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
식당가에서 간단하게 초밥을 먹을까 생각하며 들어 갔는 데
마침 입구에서 회와 초밥 할인 행사를 한다.
혼자 먹기에는 양이 좀 많다 싶지만
오랜만에 포식을 하기로 했다.
어제 저녁 마시고 싶던 술을 대신 오늘
한 잔 하면서.
또 긴 여행에 몸도 마음도 지치지 않았는가.
그런데 술을 마시며 눈에 들어 온
텔레비젼 화면에 비친
화들짝 놀랄 통계.
70세까지 백 명 중 86명이나 생존 해 있던 사람들이
80세에 이르자 거의 다 죽고 겨우 30명만 살아 남는다니.
단 10년 사이에.
역시 노후에는 더욱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것이
건강인가 보다.
하긴
사람이 살아감에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있을까.
이제는 먹는 것 하나에도
살펴야 할 나이인 것 같다.
나도
당신도
그래도 마음만은 항상 봄으로
청춘으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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